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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For. @Purpleplum0520]인연
WRITTEN BY . Logann    DATE . 160418

잘게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셨다. 한껏 물을 머금은 대지는 연신 물을 뱉어냈고 갈길 없는 물은 대지를 따라 흘러내리다 지나가는 이들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거친 발걸음 소리와 걷어차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작은 소녀는 길가의 어느 집 지붕 아래에 주저앉아 있었다. 소녀가 입은 옷은 물을 한껏 머금어 소녀의 몸을 적나라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소녀가 몸을 웅크렸지만 뼛속까지 스며든 냉기는 가시지 않았다. 탁하게 색이 바란 소녀의 눈은 잘게 떨리며 움찔거리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헤진 천 사이로 빼죽 고개를 내민 발가락이 애처로이 꿈질거리고 있었다. 하아. 소녀가 뱉어낸 숨이 새하얗게 얼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잘게 떨리던 소녀의 몸은 더 이상 떨림이 없었고 생명줄인 마냥 팔을 부여잡고 있던 손은 힘을 잃고 걸쳐져 있었다. 소녀의 입술이 푸르게 물들고 소녀의 눈은 점점 탁해졌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길의 한 구석에서 작은 빛 하나가 애처로이 깜박이고 있었다.


남자는 코트자락을 여미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부터 유독 자주 내리기 시작한 비에 하늘은 시꺼멓게 물들어 갤 기세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언제나 변덕스러운 고국의 날씨는 익숙하지만 그래도 푸른 하늘 한 조각 정도는 보길 바라는 마음을 곱게 접어 품속으로 밀어 넣으며 검은 우산을 치켜들었다. 팍, 하고 눈앞에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 투둑거리며 우산을 쳐대는 빗줄기의 소리는 질렸음에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쓸데없이 감상적이로군. 작게 삼킨 말소리가 입안에서 요동쳤다. 구두아래에서 우짖는 빗물과 젖은 대지의 비명이 귓가를 헤집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우산에 가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과 회색 구름이 수놓은 하늘은 새삼 징글징글했다. 코트자락을 아무리 여미어도 스며들어오는 냉기는 어서 집에 가 벽난로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를 종용함에도 그의 발걸음은 느리게 거리를 헤집었다.


거리를 지나던 남자는 문득 시야 한구석, 우산이 가리지 않는 그곳에 걸리는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겼다. 문득 든 호기심에 돌린 눈에 작은 잿빛 덩어리가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늙거나 병들어 쓸모가 사라져 버려진 짐승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던 남자는 덩어리가 슬금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잘게 떨리는 몸을 잔뜩 웅크린 작은 아이가 의지하고 있는 지붕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다. 작은 지붕은 소녀의 몸 위로 빗물을 그대로 뿌려대고 있었다. 모든 이들을 도울 수는 없지. 스스로 변명을 집어삼키며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려 발을 재촉하던 남자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멈춰 섰다. 보지 못 했다면 모를까, 본 것을 외면하는 재주는 그에게는 없었다.


남자는 바지 자락에 물이 스미는 것도 무시한 채 소녀의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칠게 울리는 걸음소리가 요란함에도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슬쩍 장갑을 벗고 아이의 피부에 손을 올리자 따뜻하기는커녕 물의 요정이라고 해도 믿을 차디 찬 냉기 만에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천천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며칠만에 개는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접어 팔에 걸었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아이를 조금 더 편히 안아든 남자가 발을 재촉했다. 아이를 줍자마자 비가 그쳤다. 이것이 인연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묘하게 가벼워진 마음에 남자의 발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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