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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유네라 시오탄트, 그녀의 이야기 : 행복한 기억을 담은 마법
WRITTEN BY . Logann    DATE . 160827

금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흐릿한 바람결에 흘러가는 반짝임을 소녀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흐릿한 궤적 너머로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소녀는 가만히 응시했다. 그 집요한 시선을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들어 올리는 고개와 그 움직임에 따라 드러나는 호박색 눈에 소녀는 몸속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를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유네라?”
간단한, 당장 기숙사로 내려간다면 십수명의 사람들이 부를 이름이 따뜻한 호박색 눈에 담긴 온기와 섞여 달큰하게 내려앉았다.
“아프니?”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도 잠시 허둥거리며, 진지한 자세로 채점 중이던 숙제들까지 밀어내며 일어나는 모습에 소녀는 머리카락을 그러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아프면 바로 말하고….”
“네.”
다른 이들이라면 평범한, 너무 평범해서 따분하기까지 할 대화가, 소녀는 너무도 따뜻했다.

*

기숙사 휴게실로 나온 소년, 필립 카우프만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에 소맷자락으로 눈을 비볐다. 그 유네라 시오탄트가 기숙사에서 그것도 휴게실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도서관이나 교실이 아니면 보지도 않던 책을 진지한 태도로 읽고 있다니! 후플푸프는 물론 그와 같은 학년이라면 이 광경을 보고 제 눈의 건강을 의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휴게실에 있던 모두가 힐끔힐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휘 주변을 돌아본 필립은 절친한 케일런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유네라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유네라, 무슨 책을 그렇게 보는 거야?”
“아…필립. 그냥 좀.”
화들짝 놀라 내용을 가리는 유네라의 모습에 약한 녹빛의 눈이 장난기로 빛났다. 순식간에 유네라의 손아래 깔려있던 책을 끄집어낸 소년은 책장을 몇 장 팔락팔락 넘겨보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헤에? 너 페트로누스에 관심 있어?”
반짝거리는 소년의 눈에 유네라가 피식 웃었다.
“그냥, 좀?”
“그래?”
필립은 슬금 내밀어진 유네라의 손에 책을 넘겨주곤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플푸프에는 그가 알기론 페트로누스가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조건은 둘째 치고 난이도가 상당한 마법이었으니까. 슬리데린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있다 해도 그들이 순순히 보여 줄 리가 없었다.) 그리핀도르는 가능한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고 괜히 갔다가 말썽에 휘말릴 위험이 다분했다. 레번클로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법했지만(사실 제일 확률이 높았다.) 공부 시간을 빼앗는다고 쫓겨날 확률이 더 높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냥 마법 교수님이나 어마방 교수님한테 물어보는 쪽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보여주기도 하실 거고. 필립의 말에 유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행복한 기억’이라는 것부터가 그 마법은 규격 외라고.”
필립은 저 혼자 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필립은 얼마지나지 않아 휴게실 저편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가 버렸고 유네라는 책을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페트로누스에 관한 책들 중 금지구역이 아닌 곳에 비치된 책은 거의 다 읽은 차였다.
“행복한 기억…이라.”
씁쓸한 유네라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휴게실 바닥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하긴 시오탄트양이라면 시도해 볼 만 한 마법이긴 하죠.”
마법 교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겠지만 페트로누스 마법은 디멘터를 물리치는 주문이죠. 마이너스적인 감정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디멘터에 대항하는 마법이라 플러스적인 감정…. 그러니까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런 감정을 증폭시켜줄 수 있는 행복한 기억에 대한 의존성이 큰 마법입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유려한 주문에 교수의 지팡이 끝에서 은빛 동물이 뛰어나와 유네라의 주변을 한번 휘감았다. 선명한 밍크의 모습에 유네라가 옅은 감탄을 흘리자 만족스럽게 웃은 교수가 페트로누스를 없애며 유네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오탄트 양이라면 정확한 주문은 얼마든지 가능할 거예요. 중요한건 행복한 기억입니다. 플러스적인 감정을 극대화시켜줄 매개체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보고 시도해보세요.”
몇 번이고 연습하는 것을 봐주던 교수가 문득 시계를 보더니 호들갑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시오탄트양, 이제 혼자 할 수 있겠죠? 전 이제 숙제를 채점해야 해서.”
부드러운 축객령에 유네라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교수실을 나섰다.

*

“‘행복하다’…라.”
그것보다 그녀와 먼 단어가 있을까. 어려서는 차갑고 냉소적인 부모님 사이에서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쳤고, 부모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스큅 오라비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그에 대한 사무치는 질투에 온몸을 떨었다. 엉덩이에 닿는 푹신한 이불을 한번 쓸어보던 유레라는 풀썩 침대위로 쓰러졌다.
“행복, 행복….”
어려워. 유네라는 천정을 보던 시선을 돌려 베개 옆에 놓아둔, 마법적 처리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둔 사탕 꽃다발을 응시했다. 스큅 오라비에게 쏟아지던 관심이 실험체에 대한 호기심과 광기어린 애정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뼈를 긁어내리는, 자신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었다. 결국 미쳐버린 오라비가 부모님을 죽이고 저마저도 칼로 헤집어 자살해서 붉게 물든 지하실을 밟고서는 아무런 감정도 고개를 들지 않던 메말라버린 마음에 행복이 존재하긴 할까. 유네라는 손만 들어 소맷자락에 넣어뒀던 지팡이를 끄집어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지막히 물으며 팔을 곧게 폈다. 천정을 가리키고 있는 지팡이의 끝을 유네라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행복한 기억이라. 그런건 없었다. 하지만….
“따뜻한 기억이라면 있을 지도.”
유네라의 머릿속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사탕다발을 건네던, 바쁘다면서도 그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붉은 머리카락과 따뜻하기 그지없는 호박색 눈이 스쳐지나갔다. 유네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속삭이는 듯, 하지만 정확한 발음에 유네라의 지팡이 끝에서 흐릿한 은빛 연기가 흘러내렸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평온하던 공기가 떠돌던 칼레발라의 교수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눈물나게 따뜻하던 공간. 아까보다 더 선명한 은빛의 무언가가 지팡이 끝에서 흘러내렸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조금은 절절한 부름이 유네라의 입에서 튀어나갔다.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주던 온기가 손끝에 달라붙었다. 당신이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해요. 불분명한 동물 같은 것이 지팡이 끝에서 튀어나왔다.
“익스펙토….”
부릅뜬 푸른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처음이었다. 마법사일까, 아니면 실험체가 될 스큅일까 관찰하던 차가운 눈도, 너도 이곳으로 굴러 떨어질 거라며 저주하던 눈도, 친근하게 대하는 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려워하던 눈들도 아닌 진실된 애정이 담겨있던 눈은.
“페트로눔!!”
선명한 은빛 늑대가 찬란한 털을 휘날리며 지팡이 끝에서 뛰어내렸다. 포근하게 감싸오는 은빛 늑대의 눈은 언젠가 교수실에서 본 그의 눈을 닮아 있어서, 유네라는 그 은빛 털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고 말았다.

당신이 있으면 괜찮아. 괜찮을 거예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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