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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신과 마법사] 그는 모르는 게 아니야
WRITTEN BY . Logann    DATE . 160708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처럼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절대적인 진리. 하지만 인간은 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나약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신에게 인간의 찬양은 필요하지 않았다. 신은 그저 존재하는 자. 신에게 인간은 사랑해야하는 대상. 그리고 마법사는 신의 계약자. 사랑하지만, 더 많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도구.

                                          ℘

연신 흘러나오는 하품에 작은 소녀는 서 있는 것을 포기하고 벽에 기대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분함이 가득 담긴 소녀의 연갈색 눈은 차분히 흘러가는 구름을 쫓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여기서 뭐하냐.”
소녀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에 눈만 데굴 굴려 말을 건 사람을 바라보았다. 출근 때 보였던 점잖음이란 한 점도 보이지 않는 불량스럽게 풀어헤친 와이셔츠와 마구 헤집어놓은 머리카락을 더듬던 눈이 떨어지자 말을 건 남자가 다가와 소녀를 덜렁 들어올렸다. 조심성이나 배려 한 점 없이 소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자신의 눈높이만큼 들어올린 남자가 불도 켜지 않은 담배를 질겅거리며 소녀와 눈을 맞췄다.
“설명해라. 정 혜화.”
“그냥 시간 죽이고 있었는데.”
남자의 말에 퉁명스레 답한 소녀, 혜화가 느긋한 손길로 자신의 금갈색 머리카락 끝을 다듬었다.
“개소리하지 말고. 유 채현, 이 자식 어디 갔어.”
“채현 오빠는 오빠 자식이 아닌걸?”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휘며 답하는 소녀의 모습에 남자가 이를 드득 갈며 담배를 거칠게 짓씹었다.
“이-!”
와그작 구겨지는 남자의 미간에 혜화가 못마땅한 듯 손가락을 내밀어 연신 문질러 펴자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풀고 혜화를 안정적으로 안았다. 굵고 단단한 남자의 팔뚝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잡은 소녀가 활짝 웃으며 남자의 어깨를 내리쳤다.
“채현 오빠는 갑자기 호출이 와서 끌려갔어. 그래서 난 여기서 얌전히 시간 죽이고 있었지!”
“멍청하긴. 그럼 비서실에라도 올라오지.”
“에에- 하지만 거기 가면 언니들 다 나 때문에 일 못하잖아.”
그건 싫다며 투덜대는 모습을 보며 남자가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곤 담배를 대충 양복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런 짓 하지 말라는 소녀의 외침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

“설명.”
눈덩이에 다크 서클이 판다마냥 자리 잡은 여자가 비척대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여자의 한쪽 뺨은 책상에 눌어붙어 있었다. 여자는 눈을 깜박이며 눈앞의 단단한 허벅지를 타고 올라 상대의 턱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유학 씨야 말로 제대로 말을 해주세요.”
지워지지 않는 피곤함이 베인 목소리에 유학이라 불린 남자가 와그작 표정을 구겼다. 으릉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흘러나오자 여자는 파드득 책상에서 얼굴을 떼며 그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썼다. 물론 여자가 물러서는 만큼 유학이 다가서서 무의미한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왜, 왜 이래요! 다짜고짜 와서 설명하라고 하면 내가 뭘 말해요! 정말이지, 혜화 양이랑 있는 것이 아니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정신머리가 없는데, 어떻게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 거냐고!”
“시끄럽고 보모 녀석이 왜 일을 나가.”
여자의 말에 유학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시 물었다.
“그거야 물속에 들어가려면 채현 씨가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뭐 그런 걸 따지러 오고 그래요!”
여자의 말에 유학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부서진 담배를 꺼내 대충 바닥에 버리고 손을 털었다.
“그럼 그 녀석을 비서실로 보내던가 해야 할 것 아냐.”
“으아!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말아요! 그리고 혜화 양이 무슨 애기예요?! 뭘 그렇게 싸고돌아요! 진짜 로리콤아냐?!”
여자가 화를 내든 말든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한 자루 끄집어내면서 유학이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
“내가 신과 계약하면서 잃은 대가도 아는 주제에 잘도 지껄이네. 그리고 15살이면 충분히 꼬맹이야. 온갖 인간 군상이 돌아다니는 회사 안에 대충 풀어둘 나이가 아니라고.”
여자는 유학이 버린 담배를 주워버리고는 담배에서 흘러내린 내용물을 닦아내다가 유학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무슨 그건 또 신박한 개소리예요? 혜화 양은 15살이라고 해도 어엿한 계약자라고요. 아직 어려서 임무에는 나가지 않지만요. 그리고 얼마나 똑똑한데요! 그리고 유학씨는 감싸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친척이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막말로 사랑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아니 아예 그런 감정을 모르면서.”
말을 마치곤 눈을 돌려 바닥을 샅샅이 훑으면서도 입은 연신 ‘혜화양의 부모님과는 친하지도 않으면서…….’라고 쫑알거리는 여자를 무감각하게 보던 유학이 몸을 돌렸다.
“여튼 유 채현 그 놈 오면 비서실로 올라오라고 그래.”

                                          ℘

책상에 앉은 유학은 서류들을 미뤄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의자가 끼익거리며 비명을 지르자 연신 그의 눈치를 보던 비서실의 사람들이 후다닥 고개를 숙이고 연신 자판을 두드렸다. 그들의 컴퓨터 화면은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으로 가득 찼다.

“후우.”
비서실 직원들이 고통을 받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유학은 의자에 고개를 기대며 눈 사이를 문질렀다. 연신 귓가에 들러붙어 웅웅대는 소리가 거슬려 유학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런가. 역시 내가 계약자를 잘 골랐단 말이지. 환영한다. 나, 중도의 카라온의 계약자여. 우리는 오랜 약속에 따라 너의 영혼과 나의 존재를 걸어 새로운 계약의 페이지를 넘긴다. 그대여, 그대의 새로운 이름은?
지긋지긋한 카라온의 목소리가 귓가를 긁어내렸다.

“정 유학.”
그 물음에 답한 과거의 정 유학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환영한다. 이 미쳐 돌아가는 세계에 다시 온 것을.
죽음으로 겨우 도망친 세계로 다시 발을 들이민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환영하네. 천 년을 뛰어넘어, 우리의 계약은 다시 맺어졌네. 천 년을 뛰어넘은 약속이 지켜짐과 동시에 말이네.
카라온의 목소리가 달라붙는 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이 자리가 지독하게 싫었다. 과거의 자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전생의 인연을 떠나보내 미쳤던 걸까.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생각에 유학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유학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있을 것이 분명한-검은 기운에 짓눌린 이들은 연신 채팅창에서 우는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퇴근을 부르짖으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며 모두가 고개를 퇴사를 하더라고 도망치겠다는 결심을 굳힐 무렵 굳게 닫혀있던 비서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저…저기, 실장님이 부르셨다던데요오오……?”
빼꼼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연노란색 머리카락에 비서실 직원중 문가에 앉은 막내가 슬금 손가락으로 유학이 앉은 쪽을 가리켰다. 그에 비척대며 방에 들어온 남자가 지옥에 끌려가는 모양새로 유학의 앞으로 걸어갔다.

“저…실장님…?”
그의 부름에 눈을 감고 있던 유학이 번쩍 눈을 뜨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천천히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무는 것을 바라보던 남자는 긴장한 채로 침 삼키는 소리마저 너무 크다고 생각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설명.”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남자가 뻣뻣하게 몸을 세웠다.
“죄송합니다!”
바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유학이 피식 웃었다. 유학의 목에서 으릉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오자 남자는 더 뻣뻣하게 굳어 고개를 들 줄을 몰랐다.
“유 채현. 내가 장난치자고 부른 것 같아?설명을 하라고. 보모가 보호할 애를 버리고 일하러 간 이유.”
가차 없이 떨어지는 명령에 채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이번 폭주 장소가 물속이라…아시다시피 물속에서 힘을 쓰려면 제 능력이……!”
갑자기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펜에 채현이 놀라 고개를 숙였다. 저 짐승 같은 실장이 폭주하는 것은 아닌가싶어 초조하게 살피던 직원들은 사정없이 바닥에 꽂히는 펜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럼 애를 비서실에 올리던가, 하다못해 카페에라도 앉혀놓던가. 애를 로비에 두고 가면 어떻게 하자는 거지? 너는 일이 장난인가? 애를 보호하는 것이 네 주 임무 아닌가?”
채현이 잘못한 것은 아는지 고개를 들지 못하자 유학이 의자에 다시 몸을 깊이 묻었다.
“나가.”
허리를 숙여 인사란 채현이 나가자 유학은 피곤한 느낌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

“혜화예요.”
아이는 예쁘게 미소 지었다. 기억 속에 남은 소녀와 겹치는 웃음에 유학은 심장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빠는 신님께 무슨 대가를 드렸어요?”
조잘거리는 아이의 입이 눈을 사로잡았다.
“저는 시간이 남보다 느리게 간대요.”
남들과 다른 시간을 걷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생긋 웃는 아이의 모습에 유학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정.”
“감정요?”
그게 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이를 보며 유학은 천천히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없다. 아니, 느끼지 못하는 건가.”
손에 감기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

채현은 혜화가 눈앞에 앉아 음료를 쪽쪽 빨아먹는 것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야. 왜 그래, 오빠?”
입으로는 걱정을 내뱉으면서도 혜화의 손은 착실하게 조각 케이크를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넌 실장님 안 무서워?”
“응?”
“실장님 말이야.”
눈을 깜박이기만 하던 혜화가 마지막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며 내뱉었다.
“왜 무서워해야해?”
“어?”
“똑같이 마법사잖아.”
혜화가 일어서서 접시를 챙겨들고 카페 카운터로 달려가는 것을 보며 채현은 얼빠진 소리만 내뱉었다.
“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크를 하나 더 받아온 혜화가 음료를 쪽 빨아 마시고는 채현과 시선을 맞췄다.
“그냥 유학 오빠는 둔한거야. 아마 오늘 아랑언니 사무실을 뒤집은 것도 오빠를 부른 것도 날 걱정해서겠지.”
“둔한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응? 당연하잖아. 내 심장은 감정을 표출하는데 나는 몰라. 그럼 얼마나 답답하겠어. 나는 분명 뭔가를 느끼는데 나는 모르겠다고. 이해 안 돼?”
채현은 혜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답답함이 유학 오빠를 짐승같이 보이게 하는 거야. 무서워하지 마. 그냥 적당히 넘기면 되니까.”
“어떻게 넌 그렇게 담담하냐?”
“오빠. 유학 오빠는 사랑을 모르는 게 아냐. 모르고 있는 거지.”
부드럽게 웃는 혜화의 얼굴이 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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