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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설화의 현대적 재구성 / 오봉산 설화] 가까운 곳
WRITTEN BY . Logann    DATE . 160708

1.

해가 건물들의 숲 너머로 천천히 얼굴을 감췄다. 건물 사이로 천천히빠져나오는 붉은빛이 창을 통해 슬금하고 집안에 내려앉았다. 해가 건물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집안을 점령한 붉은빛이 슬금슬금 사라지고 차갑고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집안을 스산하게 물들였다.

누군가가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집안을 제멋대로 물들이고 있던 불빛들이 화들짝 놀라 창밖으로 허겁지겁 구석으로 숨어들거나 창밖으로 빠져나가갔다. 기괴한 마찰음이 고요를 찢어발기고 이러 달칵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전등이 환한 빛을 뿜어냈다. 전등이 뿜어내는 새하얀 빛이 구석구석 파고들자 여자가 피곤한 기색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차가운 기운을 뱉어내는 하얀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벽에 걸린 달력을 힐끗 본 여자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가방과 비닐봉지를 집어 던졌다. 그 무심하고 신경질적인 행동에도 사람 하나 없이 오래 방치되어 있어 차갑기 그지없던 집이 천천히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잔뜩 베여 나오는 몸짓으로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걸리적거리는 것을 치우던 여자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창백한 안색으로 나온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던져두었던 비닐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그제야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여자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주저앉았다. 창백한 얼굴을 마구 쓸어내리던 여자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다녀왔습니다!!"

벌컥 하고 현관문이 열리고 활기 넘치는 소년의 목소리가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한참을 꾸물거리고 있던 불빛들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창을 넘어 도시의 불빛 속으로 녹아내렸다.
"왔니?"
소파에 묻혀 웅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소년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활기가 여인의 창백한 얼굴을 두드렸다.
"네!!"
힘차게 발을 놀려 방으로 향하던 소년이 부엌으로 얼굴을 돌리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전골. 아빠 오면 먹게 얼른 가방 놓고 손 씻고 와."
소년의 활기 덕분일까 피곤함이 어느 정도 가신 여자의 말에 소년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달려갔다.


2.

째깍거리며 내달리는 시곗바늘의 소리가 거칠게 울리고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윗집의 발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뒤흔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침묵에 초조한 소년이 식탁에 앉아 발을 흔들었다.
"흔들지 마. 복 나간다."
무심하게 타박하는 여자의 얼굴에선 빛이 사라진 후였다. 창백한 안색으로 속삭이듯 내뱉는 여자의 얼굴에 소년이 작게 답하며 발을 멈추었다. 소년이 발을 흔드는 내신 힐끔힐끔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며 초조함을 달랬다.

소년이 무거운 침묵에 고개를 숙이고 여자의 얼굴이 창백함을 넘어 점점 흙빛으로 바뀌어 갈 무렵 전화벨이 날카롭게 침묵을 찢어발겼다. 거칠게 바닥을 긁으며 밀려나는 의자를 힐끗 본 여자가 전화를 받기 위해 부엌을 벗어나자 소년이 얼굴을 식탁에 처박았다.
“어서 와, 아빠…….”

“뭐라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여자의 목소리에 소년이 파드득 몸을 떨었다. 불안한 눈으로 힘끔힐끔 보이지 않는 엄마를 곁눈질하다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내려왔다.
“어떻게 약속을 안 지킬 수가 있어?! 그러면 아침에 말하던가!!! 당신만 바빠?! 당신만 일하느냐고!!!!!”
힐끔 고개를 빼 거실을 바라보려던 소년이 이크, 하고 목을 움츠렸다.
“싸우지 마…….”
개미보다 작은 목소리로 주저하며 내뱉어진 소년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아 산산이 흩어졌다.
“내가 알게 뭐야!!! 애는!! 애는 무슨 죄야!!! 주에 겨우 한번 있는 저녁 식사를 망쳤잖아! 시끄러워-! 당신이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얼마나 무능하면 겨우 하루 제시간에 퇴근하는 것도 못해?!”
여자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부엌으로 들어와 의자 옆에 주저앉았다.
“싸우지 마, 제발……. 같이 밥 안 먹도 되니까 싸우지 마…….”
전화로 오가는 날카로운 말을 들으며 소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계속 중얼거리는 소년의 말이 소년의 앞에서 부서져 내렸다. 산산조각이 난 말이 소년의 앞에 수북하게 쌓였을 즈음에서야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칠게 바닥을 차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음을 내며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가 닫혔다. 그리고 부엌에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3.

소년이 힐끔힐끔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식탁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차려진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지만 소년은 그 밥상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저것만 없었으면 엄마랑 아빠가 싸우지 않았을 거였다. 한참을 그렇게 식탁을 노려보던 소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밥상은 소년이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그리고 혼자 먹는 저녁에 질려버린 소년이 고집을 부렸었다.
‘나도 엄마랑 아빠랑 같이 밥을 먹고 싶어!’

소년의 고집에 난처한 듯 웃던 부모님을 기억했다. 한참을 곤란하다는 듯 웃으면서 결국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밥을 먹자고 그렇게 약속했다. 약속은 처음에는 아주 잘 지켜졌다. 두 사람은 다음날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일로지친 몸을 이끌고 장을 봐왔고 언제나 차갑던 부엌에 그날만큼은 온기가 감돌았다. 만족스레 웃던 소년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소년의 작은 고집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짐으로 다가오는지 소년은 정말 몰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 그저 기뻤다.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날 즈음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잦아졌다. 빨리 오지 않는 상대에 화를 내고, 바쁜 현실에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년을 사랑했고 좀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소년에게 상처가 되리라고는 그들은 짐작하지 못 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일어나면 아침만 겨우 차려놓고 나가버린 부모님의 흔적만 남아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소름 끼치는 적막으로 가득한 집이 소년을 반겼다. 도시의 불빛이 제멋대로 침범해 일그러진 집은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혼자 챙겨 먹는 저녁은 차갑고 맛도 없었다. 부모님이 주고 간 돈으로 저녁을 사 먹지만 맛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같이 외식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다른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소년은 바랐다.

어긋난 모두의 소망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자신까지 상처 입혔다. 소년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금속성을 내는 귀신이 귓가를 찢어발겼다.

혼자 분을 삭이며 씩씩대던 여자는 한숨을 쉬며 방에서 나왔다. 전골을 데워 소년과 함께 먹자. 세 명이 함께 먹기로 했지만 뭐 어떤가. 그리고 집안은 다시 도시의 불꽃들이 점령해버린 채였다.


4.

텅 비어있는 소년의 방과, 부엌, 거실 그리고 욕실에 여자의 얼굴이창백해졌다. 여인은 허겁지겁 현관으로 달려갔고 사라진 소년의 신발을 보곤 비명을 질렀다.

집을 나온 소년은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춥고 배고팠지만, 소년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만 맴돌았다.
‘저쪽에 산이 보이지? 저기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각각의 봉우리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분명히…이루어…질…거야.”
한참 걸어 헉헉거리면서도 소년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뛰어 나온 여자는 달리며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받은 전화 너머에서 고성이 들려오자 여자는 발을 멈췄다.
“지금 애가 사라졌어! 일이 중요해?!”
당황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 여자가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누구 잘못인지 가릴 때야!? 누구 잘못이면 어때! 애가 사라졌다고!!!”
비명에 가까운 절규에 근처에서 가게를 닫던 상인이 여자를 불렀다.
“애가 사라졌나벼…? 혹시…이만 한 남자애인가?”
손으로 배 부근을 가리키며 키를 표시하는 상인의 모습에 여자가 성큼 다가섰다.
“네!! 네네!!! 어디로 가는지 보셨어요?!”
“어어? 아, 애가 이 추운 날에 옷도 안 입고 가길래…. 저쪽…산 쪽으로 가던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멀어지는 여자의 모습에 상인이 머리를 긁으며 다시 가게 정리에 집중했다.

소년은 아파져 오는 다리에 벤치에 주저앉았다. 어슴푸레한 가로등에서 흘러내리는 주홍색 불빛에 눈이 따가웠다.
“그냥 같이 밥을 먹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소년이 다리를 감싸 안았다. 중얼중얼 잘게 부서지는 물기 벤 목소리가 밤 공기를 타고 뻗어 나갔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걸을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냉기에 소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까지 아팠다.

뛰다시피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얼굴은 초조했다. 아무리 치안이 좋은 나라라지만 아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충분히 위험한 일이었다. 왜 집을 나갔는지 화가 치솟아 여자는 연신 입술을 짓씹었다. 혼쭐을 내주리라. 여자의 발걸음은 분노와 함께 걱정을 담아 소년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의 걸음으로 한참인 거리라도 어른에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이는 배고프고 다리가 아파 점점 느리게 걸었으니 무엇을 더 말할까. 여자는 상가가 끝나는 곳의 벤치에 쪼그려 앉은 소년을 발견했다.

“너!!!!!!”
안도감이 뒤섞인 고성에 소년이 화들짝 놀라 일어서다가 벤치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에 놀란 여자가 달려가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너, 왜 엄마를 놀라게 해! 왜 집을 나가!!!”
여자의 고성에 서러워진 소년이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랑…아빠랑…계속…싸우잖아…….”
흐끅대며 이어나가는 소년의 말에 여자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어주지 않아서 서러웠노라. 다른 애들처럼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고, 그것 때문에 싸우는 것이 더 싫었노라. 그래서…….
“그래서…저 산에…소원…엄마랑 아빠…싸우지…말라고……흐어어어엉.”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에 여자가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미안해.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그냥 같이 있었으면 하는 걸 몰라줘서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여자가 울며 말하자 소년이 자신이 더 잘못했다며 서럽게 울었다. 뒤늦게 그 자리에 도착한 남자는 부둥켜안고 우는 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둘이서 연신 말하는 것을 듣던 남자가 눈가를 매만졌다. 자신들이 잘못된 거였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다. 돈이 다가 아닌데,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저들의 잘못이었다. 남자는 아침마다 여자가 챙겨주는 손수건을 꺼내 아이와 여자의 얼굴을 연신 닦아 내렸다.
“울지 말고, 주말에는 아빠랑 엄마랑 같이 셋이서 놀러 갈까?”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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