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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커미션 / 2차 / 테미프리 / 시라이시 드림] ㄹㅌ님
WRITTEN BY . Logann    DATE . 160419

푸르기만 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느긋하고도 느긋한 검은 구름은 자기가 품은 물방울이 버거운지 무겁게 발을 옮기면서도 착실하게 하늘을 뒤덮었다. 해가 뜰 무렵엔 하늘 한쪽을 겨우 차지할 뿐이던 검은 구름은 어느덧 하늘을 뒤덮은 상태였다. 저를 가리려 드는 구름에 밀린 태양이 구름 너머로 고개를 숨기자 검은 구름은 태평히 하늘을 뒤덮고 품고 있던 물방울을 풀어놓았다.

“아.”
아침만 해도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내리치던 햇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분 나쁜 끈적끈적함만 남아 피부에 들러붙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물을 머금은 듯한 몸은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집에 갈 수 있겠어?”
제가 하는 짓이 퍽 아슬아슬했는지 시라이시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물론, 당연한 소리 그만해.”
그가 자주 하는 짓임에도 괜히 거슬려 얼굴을 밀어내자 시라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했다.
“우산은?”
“없어.”
사실 아침부터 켜져 있던 텔레비전의 기상 캐스터가 연신 장마가 다가온다며 경고했고 우산을 가져가긴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창을 여는 순간 가차 없이 들이치는 햇볕-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따가웠다. -에 그 생각은 순식간에 기억 너머로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물론 그 길고 긴 사연을 늘어놓을 생각 따윈 그에게 없었다.
“그럼 비 오기 전에 얼른 집에 가. 여름이라고 비 맞는 거 우습게 알다간 감기 걸린다.”
부산스레 가방을 뒤지던 시라이시가 저도 우산이 없다며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곤 다시 한 번 시계를 확인했다. 경고 한마디만 남기곤 늦겠다며 테니스 코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으아, 부 활동 늦겠다.”
여유롭게 하늘을 다시 한 번 쳐다본 랴트는 한숨을 푹 내쉬며 현관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비가 오기 전에 가야할텐데…….’
시라이시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부러 비를 맞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확률 따위는 둘째로 치고 당장 비를 잔뜩 먹게 될 교복의 뒤처리는 상상만 해도 귀찮고, 또 귀찮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느작대는 것은 분명, 이상할 정도로 축축 늘어지는 몸 때문이었다.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아 그다지 습하지도 않은데 몸은 왜 이리 무거운지 알 길이 없었다.
“으아아-.”
인간의 목에서 나온 목소리라고 하기엔 조금 많이 난감한 소리가 랴트의 입에서 쏟아져 내렸다.
“하아, 어서 집에 가자.”
깊은 한숨과 함께 몸을 돌린 랴트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시야 끄트머리에 걸리는 교문을 바라보았다.
“망했다.”
남학생 특유의 거친 입담이 랴트의 입술을 비집고 땅에 떨어졌다. 어느새 검게 물든 하늘은 어서 집에 가겠다는 랴트의 결심을 비웃듯 어마어마한 양의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천장으로 보호받고 있는 현관을 벗어나 교문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쏟아지는 비에 랴트는 순식간에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우중충한 날씨에 무겁던 몸은 물을 한껏 머금은 교복 덕에 쇳덩이를 짊어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왔다. 비에 축 젖은 교복이 움직임을 방해했고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굼벵이를 닮아갔다. 시라이시가 봤다면 가차 없이 뭐라 한마디를 했겠지만 지금 그는 여기 없었고, 랴트의 다리는 점점 느려졌다.
“차가워.”
저도 모르게 입이 열리자 빗물이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퉤하고 입속에 들이친 빗물을 뱉어내며 랴트는 몸에 달라붙은 교복을 잡아당겼다.
‘겨울이 아니라 다행인가.’
그나마 두껍고 입어야하는 것도 많은 동복에 비해 하복은 더운 여름에 입기 위해 얇은 재질을 이용한 교복인지라 상황이 나았다. 물론 헐렁헐렁하던 교복이 몸에 들러붙어 온몸을 옥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고, 더는 젖을 곳도 없었다. 랴트는 가방을 살 때 종업원이 자랑하던 그 알량한 방수 기능이 가방 속의 교과서를 지켜 주리라 믿으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한 랴트는 제일 먼저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방바닥에 쏟아냈다. 종업원이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한 가방의 방수 기능은 제 기능을 했는지 교과서의 끝자락이 조금 젖었을 뿐 멀쩡했다. 교과서가 망가졌을 때 다시 받을 일이 아득했기 때문에 연신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교복을 붙잡았다. 비에 푹 절은 몸은 차게 식어 손끝의 감각이 둔탁했다. 정말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랴트는 초조하게 얼어붙은 손가락을 놀려 교복 단추를 풀어 내리기 시작했다. 추위에 곱아버린 손은 생각만큼 잘 움직여주지 않았고 결국 랴트는 교복을 푸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다 젖었는데…….”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마따나 이미 젖을 대로 젖어 더 나빠질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랴트는 바로 보일러를 틀고 욕실로 들어갔다.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따뜻한 물이 쏟아지길 기다리던 랴트는 김이 흐르는 따뜻한 물이 흘러나오자마자 샤워기 아래에 몸을 맡겼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따뜻한 물이 천천히 몸을 달구었다. 어느 정도 추위가 물러가자 랴트는 더듬거리며 교복을 벗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랴트는 묘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에 연신 눈을 깜박이던 그는 천천히 눈을 굴려 시계를 찾았다.
“아-.”
‘아…아홉 시?’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놀라 윗몸을 번쩍 일으킨 랴트는 따끔하게 찔러오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누군가가 사정없이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은 고통과 뒤이어 찾아오는 현기증에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두통에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던 랴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가볍게 든 잠을 밀어내던 랴트는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아아.”
제대로 맛이 간 목소리가 꺼끌거리며 목을 긁었다. 이 상태로 학교에 갈 수 있을 리도 없고 어찌어찌 간다 해도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랴트는 순간 세상이 검게 물드는 감각에 비틀거리며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미친…….”
감기다, 그것도 무지 독한. 랴트는 확신했다. 물론 어제 그만큼 비를 맞고 정상적일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감기라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물론 바로 찡하고 울리는 머리에 고통어린 신음일 뱉어냈지만.
“일단, 학교에 전화를…….”
담임이 신경질적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랴트는 보이지 않는 핸드폰을 찾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에 뭉쳐진 젖은 교복 사이로 보이는 은빛 물체에 랴트는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을 떠도는 수리비라던가, 아직 많이 남은 할부 라던가를 떠올리던 랴트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현관을 바라보았다. 집에는 전화가 없으니 연락을 하려면 밖으로 나가 공중전화를 찾아야했다.
‘가능할까?’
저 자신에게 질문한 랴트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다 또다시 덮쳐오는 두통에 머리를 싸매었다. 절대 무리. 짓씹듯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로 돌아갔다. 천천히 오르는 열에 몸이 차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챈 랴트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 올리고 눈을 감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할래.”



“네?”
갑작스러운 교무실의 호출에 응한 시라이시는 황당한 듯 연신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랴트군이 오늘 학교 안 왔는데, 혹시 아는 것 있니? 너희 친하잖아.”
학교에서 몇 안 되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이고 다정한 여교사’가 걱정을 담뿍 담아 되묻자 시라이시는 난감한 기분에 연신 뺨을 긁적였다. 시라이시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어제 비 오기 직전에 랴트와 헤어졌다. 그리고 부실에서 곧 다가올 경기의 엔트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시라이시가 번쩍 고개를 들자 교사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아마…… 랴트 어제 비 맞아서 감기 든 것 같은데요?”
시라이시의 말에 교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랴트가 우산 안 가져왔는데, 저희가 헤어지고 나서 비 왔거든요. 어제 컨디션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분명히 비를 맞았을 테니까 감기 걸렸을 것 같아서요.”
그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교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라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럼 시라이시군.”
“네?”
“조퇴증 끊어 줄 테니까, 랴트군에게 가볼래? 많이 아픈 건지 걱정도 되고 연락도 안 되니까 영 걱정되네.”
뭣보다 혼자 산다고 들었어. 덧붙이는 교사의 말에 시라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에 들떠 잠들어있던 랴트는 거칠게 집안을 헤집는 알람소리에 느리게 눈을 떴다. 그사이 열이 더 올랐는지 흐릿한 눈앞에 가만히 눈을 깜박이던 그는 급기야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척대며 몸을 일으켰다. 열이 머리까지 익혀버린 건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문에 다가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랴트! 문 열어!”
쾅쾅거리는 소리를 바로 앞에서 듣자 머리가 아파왔다. 서둘러 잠금장치를 풀자 채 손을 떼기도 전에 열리는 문에 몸이 휘청거렸다.

10분이 넘게 초인종을 누르던 시라이시는 약이 담긴 봉지를 대충 내려두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랴트를 부르던 그는 잠금장치가 풀리며 나는 약한 소리에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랴-!”
시라이시는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문에 딸려 나오는 랴트를 받아들었다가 뜨거운 체온이 닿아오는 것에 놀라 서둘러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너 병원도 안 ㄱ…!”
시라이시의 목소리에 머리가 울려 정신이 없던 랴투가 대충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머리아파.”

어찌어찌 랴트의 방으로 자리를 옮긴 시라이시는 그가 밥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마를 짚었다. 약을 사오긴 했지만 약을 먹으려면 식사를 해야 했다. 당장 음식을 만들 시간은 없으니 뭔가 요깃거리를 사오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시라이시는 랴트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
침대에 파묻혀 눈만 껌벅이는 랴트의 모습에 그가 한숨을 뱉어내곤 입을 열었다.
“열쇠.”
“거실, 교복 주머니.”
열에 들떠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그가 다시 한숨을 내쉬곤 발을 옮겼다.
“자지마.”



시라이시가 사온 죽을 다 먹은 랴트가 용기와 수저를 밀어낸 후 고개를 들어 시라이시를 바라봤다.
“학교는?”
랴트의 말에 그제야 학교에 연락하지 않았음을 기억해낸 시라이시가 휴대폰을 꺼내며 약을 내밀었다. 사정없이 구겨지는 랴트의 얼굴을 본 그가 얼른 먹으라고 말하며 통화를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시라이시의 목소리를 듣던 랴트가 손안에서 약을 가만히 굴렸다. 들고 있을 뿐인데 쓴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입안에 물을 한가득 머금은 랴트가 서둘러 약을 삼켰다. 그날부터 시라이시의 간호가 시작되었다.



랴트의 식은땀을 닦아주던 시라이시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항상 곱상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새로웠다. 열에 들떠 붉게 물든 뺨도, 우물거리는 입술도 생각보다 귀여웠다. 물론 하는 행동이 귀엽기 짝이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허허롭게 웃은 시라이시는 그의 이마를 마저 닦아주다가 다시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서 그런가, 시라이시는 기묘한 기분에 감싸여 슬금 고개를 숙였다. 항상 조금만 멍하니 있어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시선에 끝에 걸려있던 랴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그를 쫓았는지 알 것 같은 시라이시가 옅게 웃음을 흘렸다.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을 보고 제 마음을 알아채는 자신도 꽤나 악취미라고 생각하며 시라이시가 허리를 펴자 때마침 잠에서 깬 랴트가 스르륵 눈을 떴다. 그것을 본 시라이시는 기묘한 웃음을 머금고 랴트의 귀에 속삭였다.

“좋아해, 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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