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어둠이 흘러내렸다. 차갑고 오싹한 어둠은 스멀스멀 흘러내려 대지 위를 기어 다녔다. 바닥으로 흘러내린 어둠이 느긋하게 움직였다. 흔들리는 어둠 속에 배구공 하나가 빙글 돌았다.
새하얀 독수리가 날아올랐다. 거칠고 빠르게 꽂아 넣은 서브가 상대의 코트 위를 유린했다. 상대편의 리베로 바로 옆에 틀어박힌 서브였다. 서브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수비의 핵, 리베로의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정신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날아온 서브는 그의 정신을 박살냈다. 심판이 시라토리자와의 승리를 선언했다. 우시지마는 부의 매니저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 땀을 닦으며 옆 코트에서 진행 중인 경기를 바라보았다. 아오바죠사이의 경기.
“선배님.”
후배의 부름과 경기장을 나가고 있는 부원들을 확인한 우시지마가 오이카와를 힐끗 보곤 몸을 돌렸다. 뛰어난 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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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을 더듬던 우시지마가 가볍게 오이카와의 손바닥을 잡았다. 가만히 입술을 그의 손바닥에 대고 있던 우시지마가 작게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있는 상태라 뭉그러진 소리가 손바박을 간질였다.
“왜, 우시와카쨩?”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말투에 우시지마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아름다운 사람.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사랑스럽다.
“사랑한다.”
“에에, 새삼스럽네.”
지금도 흥미가 없다는 듯 가벼이 반응해주고 있음에도 뭐라 형언 할 수 없이 사랑한다.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든다, 오이카와.”
슬금 든 눈에 비치는 오이카와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새하얀 병실, 홀로 돌아가고 있는 TV가 배구 경기를 비추고 있었다.
“오이카와.”
괜한 불안감에 그의 손을 꾹 잡자 오이카와의 눈이 우시지마에게로 향했다.
“우시와카쨩의 스파이크는 여전하네.”
그 버석거리는 목소리에 우시지마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미간을 살살 눌러 편 오이카와가 가볍게 웃었다.
“우시와카쨩은 인상 쓰면 못생겨지니까.”
나랑 있을 때는 그러면 안 돼. 설핏 웃는 미소와 함께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오이카와.”
“왜 그렇게 나를 불러.”
눈앞에 다시 과거의 경기가 흩날리듯 지나간다. 지금과는 달리 사랑스럽고, 그렇기에 더 잔혹했던 오이카와가 떠올랐다.
“오이카와.”
죽지마라. 무릎 꿇어 빌고 싶었다. 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말을 그는 가만히 삼켰다. 친애하는 나의 오이카와.
“다음에도 승리를 네게 바치겠다, 오이카와.”
“응. 기대할게.”
과거의, 나를 쓰러트리겠다는 각오로 빛나던 너를 그린다, 오이카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우시지마는 다시 오이카와의 손바닥에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오이카와…….”
“응.”
오이카와. 천재들의 시대에 태어난, 천재에 가까운 범재. 끝없는 노력으로 천재를 짓밟고 고교 배구계에 우뚝 선 최고의 범재. 그리고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추락한 이. 그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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