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오이카와가 슬쩍 마츠카와의 옷자락을 당겼다. 마츠카와의 졸린 것 같은 눈이 오이카와에게 닿자 그가 가볍게 머리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정리한 마츠카와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오이카와가 마주 웃자 뒤에서 보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머리를 내리쳤다.
“집중해.”
“윽, 이와쨩 너무해…!”
“쿠소카와! 회의 중이잖아.”
나지막한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한 대 맞은 머리를 슥슥 쓸면서 다시 감독과 코치에게로 눈을 돌렸다.
“있잖아, 맛층.”
“?”
마츠카와의 입술이 오이카와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런 건 계약에 없었잖아.”
오이카와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조용히 내리눌렀다. 혹시나 그의 가슴에 입을 대고 있는 마츠카와가 알아차릴까봐.
“뭐…….”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가 다시 빠르게 뛰는 심장에 가볍게 심호흡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쿡쿡 웃는 마츠카와 때문에 찌르륵 가슴이 울렸다. 싫다. 정말 싫다. 아무리 놀랐다지만, 왜 하필 그 순간 들켰을까. 당황하면서도 맛층이 건네 온 달콤한 말에 좋다구나 덥썩 문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런 나를 맛층은 모르겠지. 오이카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몸을 쓸어내리는 마츠카와의 손길과 피부에 닿아오는 숨결이 환상 같았다. 눈을 뜨면 부서질 것만 같은, 그런 환상.
℘
“야, 마츠카와.”
“…?”
할당된 연습을 마치고 땀을 닦는 마츠카와 쪽으로 공 하나가 날아왔다. 가볍게 공을 잡은 마츠카와가 주변을 돌아보다가 다가오고 있는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너 오이카와랑 무슨 일 있냐?”
마츠카와가 손 안에서 공을 한 바퀴 굴렸다.
“왜?”
“요새 좀 이상하길래.”
너희 둘. 하나마키의 말에 마츠카와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뭐……, 딱히.”
“그래?”
하나마키는 뭔가 추궁할 생각까지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카와가 잡고 있던 공을 받아든 하나마키가 연습을 이어가기 위해 멀어지자 마츠카와는 드링크 병을 손안에서 가볍게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습기가 기분 나쁘게 몸에 달라붙던 날, 마츠카와는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축 젖은 몸이 기묘할 정도였다. 마츠카와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었다. 바로 며칠 전 시라토리자와를 넘어서지 못하고 또다시 우승을 빼앗겼으니 우울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배구부 연습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 집 앞에서 마츠카와는 열쇠를 부실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내일 집에 오실 예정이었기에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마츠카와는 당연하게도 학교로 되돌아갔고 그곳에서 그는 펑펑 울면서 자위하고 있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하나마키의 집에 신세라도 질까 하며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귓가에 ‘우시와카’라는 이름만 들리지 않았다면. 마츠카와는 순간적으로 치솟는 불길을 어찌하지 못했다. 아니 어찌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문을 열고 오이카와를 뒤에서 껴안았다. 놀라 숨을 들이키는 오이카와에게 그는 올가미를 드리웠다.
℘
마츠카와는 자신의 아래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는 오이카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이카와, 우시지마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야!’
‘헤에, 그럼 왜…….’
그날의 대화 조각들이 흩날렸다. 마츠카와는 조금 거칠게 손을 움직였다. 나는 오이카와를 좋아하는 걸까. 탁해진 마츠카와의 눈이 살짝 벌어진 오이카와의 입에 머물렀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마츠카와의 입술이 오이카와의 입술을 덮었다.
무엇이 답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