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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쿠로켄] 約束
WRITTEN BY . Logann    DATE . 161126

짙푸른 밤, 새빨갛게 빛나는 달 아래에서 나는 너와 약속을 했다. 포기하지 않기. 밝게 살기. 서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기.

있잖아, 쿠로.

새하얀 이불 속에 파묻혀있는 너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손끝에 닿은 피부에서 전해지는 그 미약하고 희미한 온기가 무서웠다.

있잖아, 쿠로. 나는 네가 살길 바라.

너와의 시간 중에서 단 하나도 빛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에 한 게임의 공략을 잊을지언정 너와 보낸 시간들 중에서 단 하나도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살길 바라. 무기력하고 게임 말고는 흥미도 없던 나와 함께하느라 고생했어, 쿠로.

쿠로오의 희미한 내음을 맡으며 켄마는 그의 입술 위로 입술을 포갰다. 오가는 것은 그저 체온뿐인 그 경건한 입맞춤에 켄마의 눈이 작게 가라앉았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옅은 숨을 그저 몸 속 깊이 담으며 켄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있잖아, 쿠로.

마지막으로 담은 쿠로오의 얼굴은 너무도 평안해서 켄마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사랑해, 쿠로오.”
병실 문이 아주 조용히 열렸다. 잠든 쿠로오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고요히. 탁하는 작은 소리가 병실을 살금 돌아보곤 흩어졌다. 닫힌 문 너머, 여전히 잠들어 있던 쿠로오의 눈꼬리에 작은 물길이 흘러내렸다.

나는 사실…배구가 좋았어.

***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했다.

‘귀찮다’라고 생각한 배구가 즐거워진 것은 언제일까. ‘그만두고 싶어’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던 배구가 특별한 의미를 품게 된 것은 언제일까. ‘그냥 하고 있을 뿐이야’라고 답하던 배구가 소중해 진 것은 언제일까.

“켄마!”

시간은 흐른다. 그것은 멈추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돌아보는 법을 배운 적도 없는 것. 켄마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쇼요.”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마지막 한 톨까지 짜내어 발악했던 그 경기가 떠올랐다. 처음 만난 오렌지 코트 위의 까마귀는 아주 무서워서, 그가 바라마지 않던 경기의 쾌감은 마치 공략이 존재하지 않는 보스를 공략하는 것 같은, 전 세계의 게이머들보다 한발 앞서 공략하는 것과 같은 뭔가가 있었다.

“있잖아, 그때 못 물어봤거든!”
“응?”
텅 비어버려서 조용하기 그지없는 공간에, 낯선 얼굴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어설피 메운 그 시간에.
“배구, 재밌었어?”
“…….”
“응?”
“……응.”
재밌었어. 처음으로 속닥였던 그 마음을 네가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구나! 그럼 배구 계속 할 거야?”
“아니.”
“에에….”

들려, 쿠로? 네가 사랑하던 그것을 나도 사랑하게 되어버렸어.

***

아직도 기억한다. 모든 것에 소극적이던 나를 끄집어내던 너를. 싫다는 말을 무시하고 끌어내기 바쁜 너를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은….

“켄마!”
너보다 나를 더 먼저 생각하고, 더 먼저 챙겨주려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너’보다 ‘미쳐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것에 빛나는 너’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윽.”
바닥을 데구륵 구르는 배구공에 너는 후다닥 네트를 넘어 내게 달려와 나를 살폈었다.
“리시브 하다가 한 눈 팔면 어떻게 해!”
한 눈 팔지 않을 수가 없잖아.
“…응.”
“자, 다시! 이번에는 조심해!”
내게 어설프디 어설픈 서브를 날리면서도 즐겁다는 듯이 웃는 네가 내 앞에 있는데. 어떻게 내가 한 눈 팔지 않을 수가 있겠어.

있잖아, 쿠로. 그러니까 나는 네가 살길 바라.

***

새하얀 병실에서 쿠로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바라본 세상은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시렸다.

“…ㅋ…ㅏ….”
제대로 소리가 되지 못한 부름에 쿠로오는 천천히 눈을 굴렸다. 새하얀 공간, 익숙한 냄새, 그리고….
“아, 아아…!!”
새빨간 피. 갓 뜬, 새빨갛게 물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과 눈물이 뒤범벅되었다. 마치 새끼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짐승의 어미처럼.

쿠로오의 비명은 병실을 넘어 닫힌 병실문을 타고 넘었다. 분명 잠들어있을 병실에서 나오는 비명소리에 문을 열었던 간호사는 황급히 의사를 호출했다. 그녀는 벌써 며칠인지 세는 것도 당혹스런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많큼 강한 발작에 용을 쓰며 온몸으로 그를 제압하려 애썼다.

“진정하세요, 진…!”
“켄마아아!!”
거칠게 병실 문이 열리고 뛰어 들어온 의료진들이 그를 침대로 잡아 눌렀다. 잔뜩 긴장한 몸속으로 파고든 약물이 쿠로오를 세상 저 너머로 집어던졌다.

안 돼, 안 돼. 가지마, 켄마.

쿠로오가 깨어났다.
***


잠에서 깨어난 쿠로오는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연신 말을 거는 어머니를 무시하면서 살았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 켄마를 쫓으며. 그런 아들의 모습에 그녀는 결국 한숨을 뱉어내며 입을 열었다.

“켄마는 살아있어.”
처음으로 반응하는 아들의 눈에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아있으니까 정신 좀 차려, 못난 녀석.”
“아, 아아….”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 다 큰 아들의 뺨을 닦아주던 그녀가 그를 끌어 안았다.
“그러니까 얼른 기운 차리고 보러 가자.”
지금 네 얼굴이 얼마나 흉한데, 켄마가 기겁할라.
“상태, 상태는요?”
“네가 이 꼴인데 걔는 어떻겠니.”
그녀의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래. 네가 살아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죽는다면 내가 죽어야지. 만약 내가 너를 배구부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견습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너를 합숙에 끌고 가지 않았다면….

***

“켄마, 우리 아가. 쿠로오가 일어났대.”
너도 어서 일어나렴. 코즈메 부인의 억눌린 울음이 유리창에 막혀 부서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부모도 넘어갈 수 없는 유리창 밖에서 그녀가 울부짖었다.

어서, 어서 일어나렴. 우리 아가. 네가 그리도 좋아하는 쿠로오가 기다린단다.

닿지 않는 어미의 울음사이로 켄마가 눈을 떴다. 고요하던 공간을 기계의 비명이 잠식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그녀가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았다. 유리창이 뿌예질 정도로 찍힌 그녀의 손자국이 처절했다.

부디, 부디 우리 아들을….

삐이이이이-

긴 기계음이 어미의 소원을 비웃었다. 섬뜩한 비명 사이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살려내기 위하여. 사신의 낫이 완전히 작은 소년의 목줄기를 뜯어내기 전에 움직이기 위하여.

멈춰버린 심장을 자극하는 거친 숨들이 어지럽게 뒤얽혔다. 미친듯이 비산하는 땀과 소원을 비웃듯 완전히 죽어버린 소년의 위에서 의사들이 굴러 떨어졌다.

코즈메 켄마는 죽었다.

***

“….”
쿠로오의 눈이 커졌다. 그의 손에서 스푼이 흘러내렸다. 이불을 적시는 묽은 죽이 마치 쿠로오의 영혼과도 같아보여서 쿠로오 부인이 그의 손을 빠르게 부여잡았다.
“아들?”
그런 어머니의 부름도 무시하고 그는 시체 같은 모습을 한 코즈메 부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네 잘못이 아니야.”
코즈메 부인의 눈물에 쿠로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그저 바들바들 떨었다.
“너라도 살아줘서 고맙다, 쿠로오.”

굵은 눈물이 쿠로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기 전에, 아줌마도 못 들었는데…. 선생님들이 그랬대.”
쿠로…약속, 이라고. 겨우 그 말을 뱉어내곤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코즈메 부인을 보며 쿠로오가 눈을 감았다.

아아, 켄마. 네가, 네가 살았어야 해.

***

“아, 이 선수는 정말 대단한 선수죠?”
“네, 그렇습니다. 리시브 발군, 블로킹 발군. 흠잡을 곳 없는 선수죠.”
“일본에는 남자 배구가 활성화 되지 않아서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죠.”
“아쉬운 일이예요.”
“그렇습니다. 저번 시즌에는 진출한 리그 베스트7에 들어서 상도 받았다고 하던데요.”
“아, 말씀드린 순간 쿠로오 선수! 완벽한 블록! 상대팀 에이스의 회심의 한방을 막아냅니다!”
“경기 종료! 오늘의 MVP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쿠로오 선수겠네요.”

켄마.
쏟아지는 칭찬과 환호 속에서 쿠로오는 천천히 하늘을 바라봤다. 빛나는 조명들에 눈이 따가웠다.

보고 있어, 켄마? 약속…제대로 지키고 있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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