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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커미션 / 2차 / 하이큐 / 아카아시 드림] A님
WRITTEN BY . Logann    DATE . 160419

1. 봄날과 흩날리는 벚꽃비와 같이

봄은 겨울이 너무 길고 겨울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지 못한 순간에,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봄은 겨울날의 차디 찬 바람에 아스라이 흔들리지만 결국 겨울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듯 점점 선명해져서 그저 가만히 서있는 이의 옷깃을 뒤흔든다. 내 작은 마음도 그렇게 자라났다. 처음에는 겨울날에 스미는 봄기운처럼 흐릿하고 아지랑이처럼 흐릿했지만 어느새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봄날처럼.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아주 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입학하는 학교의 벚꽃 아래에서. 흐드러지게 핀 새하얀, 그리고 연분홍빛의 벚꽃들이 흩날리는 4월의 입학식에 가는 길에서였다. 까만 머리카락과 단정하지만 조금은 피곤한 것 같은 기색이 있는 담담한 얼굴, 운동을 하는 듯 바른 자세로 휴대폰을 연신 들여다보고 있었다. 폰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못마땅한 얼굴로 연신 교문 쪽을 바라보며 손버릇인 듯 연신 손가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입학식에 가는 것도 잊고 한참을 쳐봤더랬다. 전교에 울려 퍼지던 입학식 안내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 곳에서 그가 떠나는 것까지, 고등학교 첫날을 지각이나 결석으로 장식하면서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

벚꽃비가 화려하게 내리던 날의 두근거림은 봄날이 바람에 실려 쓸려나가고 순식간에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갑작스레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그건 사라진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여하간 고등학교는 중학교와는 아주 많이 달랐고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아이들과 친해져야했고 선생님들은 은근히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름도 모르는, 그저 지나는 길에서 만났던, 만남이라거나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조차 민망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순식간에 빛이 바래버렸다.

정신없는 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적당히 친해진 무리와 함께 수다를 떨던 점심시간에 교실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선배들이 들어왔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검은 색이 수놓인, 아주 활기찬 선배가 들어오고 활기찬 그를 말리는 남자가 뒤따라 들어왔을 때, 나는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의식 저 너머로 날아가 버리고 그를 말리는 단정한 남자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사라졌다고, 빛이 바래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태어나고 빛을 되찾았다. 아니, 그 감정은 사라진 것도 빛아 바래버린 것도 아니었을지 몰랐다. 그저 현실이 버거워 잠시 잠들며 다시 깨어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

어린 소녀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꿈결과도 같았다. 그 반짝이는 마음이 어찌도 찬란히 빛나는지 소녀는 차마 그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소녀의 뺨에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의 옆구리를 찌르며 무슨 일인지 털어놓길 재촉했다.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봄날을 맞이한 친구를 둔 소녀들의 뺨이 달아올랐다. 수줍게 속삭이는 소녀의 마음을 소녀들은 퍽이나 기꺼워했다. 소녀들의 축복과 응원 속에 소녀는 소녀의 마음에 찬란한 빛 한 송이를 내려 두고 간 그의 이름을,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가 소속된 반과 부활동을 알게 되었다.

차마 다가갈 용기가 없던 소녀를 위해서 소녀의 친구들은 기꺼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실습 시간이면 괜히 예쁘게 구워진 쿠키를 골라내주고 손재주가 좋은 이가 포장해 소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홀로 찾아가지 못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괜히 그의 반에까지 찾아가 주었다. 마음에도 없는 이들에게 쿠키를 건네며 소녀가 그에게 쿠키를 건네도록 도와주었다. 소녀의 마음은 그렇게 수많은 도움과 애정 속에서 하나하나 빛나고 있었다.


2. 어쩌면 조용하게 스며들어버린

아카아시 케이지, 후쿠로다니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이며 강호인 배구부의 부주장 직책을 맡은 소년은 치솟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았다.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는 그의 주장은 정말이지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입학식 날 오전부터 공을 올려달라며 일찍 오라고 소리 지르던 그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받아둔 체육관 열쇠를 두고 왔다며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꽁지깃에 불통이 튄 부엉이마냥 날뛰며 사라진 이의 흔적을 쫓던 그는 슬그머니 와 닿는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힐끗 돌린 시선의 끝에는 처음 보는 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시선에는 한 점의 어둠도 담겨있지 않아 그는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누군지 모르는 이에게 신경 쓰기엔 그는 지금 도통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그의 부장과 그의 손에 드린 체육관 열쇠의 행방이 더 중요했다.

*

아카아시는 날뛰는 부장을 붙잡았다. 1학년들에게 배구부가 부활동중에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홍보를 해야 하는 이 시간에 보쿠토가 이렇게 날뛰어서야 제대로 뭔가가 될 리가 없었다.
“Hey, hey, hey! 우리 배구부에 들어오라고!”
도대체 어디서 힘이 나는지 모를 보쿠토를 다른 선배들에게 떠넘기든 맡겨버린 그가 교탁 앞에 섰다.
“저희 후쿠로다니 배구부는 전통적인 강호교로서….”
예정된 홍보를 위한 문구를 읊어 내리던 아카아시는 피부에 와 닿는 선명한 시선에 힐끗 시선을 돌렸다. 까맣지만 빛이 닿은 곳에는 갈 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고동색 눈과 마주쳤다.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소녀의 뺨에 아카아시는 멈칫거리며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시선에서 소녀가 사라진 후에야 안정한 아카아시는 그제야 시계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부 설명을 끝내고 그가 내려온 후에 교탁 앞으로 나선 시로후쿠가 부활 신청 방법을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손가락을 매만졌다.
“아카아시!”
“조용히 하세요, 보쿠토 상.”
가차 없는 그의 말에 시무룩해진 보쿠토가 칭얼대던지 말든지 아카아시는 지끈거리는 그의 머리를 부여잡을 뿐이었다.
*

아카아시는 손에 들린 쿠키봉지를 가볍게 매만졌다. 우르르 몰려온 1학년들이 산발적으로 내밀고간 쿠키 냄새가 온 교실에 진동했다. 그의 급우들은 눈치가 아주 빨랐다. 눈치가 빠르지 않더라도 그렇게 발갛게 물들인 채로 소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손을 내밀던 이의 감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야, 이거 우리 아카아시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냐?”
“당연하지! 네놈이 1학년들한테 이런 이벤트 없이 쿠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왁자지껄해지는 반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며 쿠키를 가방 속에 밀어 넣었다.
“어라? 아카아시 안 먹냐?”
“별로.”
“얘네 쿠키 무지 맛있어. 우리 반 누구누구 씨들이랑은 다르다고.”
“야!!”
괜한 말을 꺼낸 죄로 여자아이들한테 끌려가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봐준 아카아시는 착실하게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

“아카아시, 요즘 인기 좋다며?”
“맞아, 요즘 1학년에 무지 예쁜 여자애가 너 좋아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대체 언제 3학년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진 걸까. 아카아시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니저들의 말에 주변에 있던 3학년들까지 모여들어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누구냐, 너는 관심이 있느냐부터 시작한 그들의 놀림을 빙자한 수다는 어느새 그 소녀는 어째서 그들의 부주장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토론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연습이나 하죠.”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당했고 아카아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보쿠토 상, 토스 올려드릴게요.”
“오우! 좋아!”
물론 그들의 무시에 지친 아카아시가 최후의 수단으로 보쿠토의 토스기계를 자처한 덕분에 그들의 대화는 금방 끝을 맞아버렸지만.

*

“그런데 아카아시, 정말 관심 없어?”
뜬금없이 속삭여오는 시로후쿠의 말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땀을 닦아냈다.
“그 애 공부도 잘하고 엄청 예쁘던데.”
“누군지도 모릅니다.”
“아카아시, 나쁜 남자네.”
키득키득 웃는 시로후쿠의 얼굴이 유쾌해보여서 아카아시는 말없이 다 마신 드링크병과 수건을 트레이에 담았다. 반에서도 부에서도 정작 그는 관심이 없는데 다른 이들이 더 난리였다.

3. 우연이라는 이름이 공교롭게도 시간과 만나서

소녀는 책을 덮었다. 적막함만이 흐르는 도서관에서 소녀는 가볍게 기지개를 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바깥을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짙은 만족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많이 들춰보았는지 끝이 헤진 문제집을 단정하게 골라 가방에 집어넣고 흘린 지우개 가루라던가 부서진 샤프심을 꼼꼼히 추슬러 버린 후에야 일어선 소녀는 조심스럽게 시계를 확인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집중해버렸네.”
차갑게 식어버린 복도에 소녀의 발걸음소리만 작게 흘러내렸다. 이미 전원을 내렸지만 혹여 켜져 있는 곳이 있을까 슬쩍 도서관 안으로 고개를 밀어 넣은 소녀가 불이 완전히 꺼져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빼내고 문을 닫았다. 도서관 문의 자물쇠를 단단히 채운 소녀는 몇 번 문을 흔들어 잘 잠겨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문에서 손을 뗐다. 열쇠를 잘 갈무리해 가방에 집어넣은 소녀는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과 듬성듬성 켜진 전등에 의지해 발을 옮겼다.

*

“아카아시, 한 번 더!”
“늦었습니다.”
단호한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가 찡얼거리자 아카아시는 힐끗 시계를 확인하곤 약간의 협박과 위협이 섞인 말로 그를 달랬다.
“오늘 무리하면 내일을 배구를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그의 말에 파드득 떤 보쿠토가 그건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카아시는 발치에 굴러다니는 공을 바구니에 집어넣으며 보쿠토에게 손짓했다.
“공을 줍는 동안 네트를 정리해주세요.”
공을 줍는 것을 부탁했다가는 그가 정리가 다 끝낼 때까지 공을 가지고 배구를 할 보쿠토를 잘 아는 아카아시는 냉큼 공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에 완전히 연습을 포기한 보쿠토가 네트를 내리는 것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뒷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끝난 뒷정리에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샤워실로 밀어 넣곤 대충 담아놓았던 수건을 세탁물 바구니에 가져다두곤 그도 샤워실로 들어갔다.

*

“어라? 왜 지금 집에 가?!”
아카아시는 먼저 앞서 나간 보쿠토가 누군가를 붙잡고 떠들고 있는 것을 보곤 뛰듯이 발을 놀렸다. 금세 그들에게 도착한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소녀에게서 떨어트리자 소녀의 시선이 아카아시에게 닿았다. 보쿠토의 기세에 밀려 당황으로 물들었던 소녀가 아카아시를 보자마자 뺨이 발그레 물들었다. 그것을 본 보쿠토가 아카아시와 소녀를 연신 돌아봤다.
“아는 사이야, 아카아시!?”
“안다고 해야 할지….”
“그게 뭐야!”
“이름을 모릅니다.”
단호한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의 관심은 순식간에 소녀에게로 돌아갔다.
“너 이름이 뭐야?!”
소녀의 웅얼거리는 말은 아카아시에게는 제대로 닿지 않았지만 보쿠토는 들리긴 했는지 고개를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끄덕였다.
“르네라고 불러도 돼?!”
“네에…. 그…아카아시 선배님도….”
소녀의 말에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 시간에 집에 가는 거야? 지금까지 부활 했어?”
“아뇨. 그 공부를 하다 보니….”
르네의 말에 보쿠토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공부 좋아해?”
난 완전 싫은데! 어린아이 같은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순간 마주친 고동색 눈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도 좋고…뭔가를 배우는 것도….”
“엑?”
“보쿠토 상이 뭔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즐거워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아카아시는 질색하는 보쿠토의 얼굴에 설핏 르네의 눈에 스쳐지나가는 난감함을 눈치 채곤 입을 열었다. 그의 설명에 보쿠토는 그런 거 였었냐며 놀라워하다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못하던 걸 하게 되면 엄청나지!”
르네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떠드는 보쿠토를 무시한 아카아시가 르네에게 물었다.
“항상 이 시간에 돌아갑니까?”
“앗, 네!”
그,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머뭇거리는 소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아직도 체력이 남았는지 방방 뛰어대는 보쿠토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우리랑 매일 같이 가자!”
벼락같은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늦었으니까 위험하다고! 르네는 집에 걸어가?”
보쿠토의 정신없는 물음에도 성실히 답하는 르네를 보던 아카아시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어? 그 근처에 아카아시 살지 않아?!”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르네를 바라보았다. 그가 사는 동네는 주택가라 그런지 골목도 많고 가로등도 꽤나 듬성듬성 있어서 길이 어두운 편이었다. 그런 곳을 늦은 시간에 혼자 지나다니다니. 아카아시는 생각보다 더 조심성이 없는 후배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보쿠토 상의 말이 맞습니다. 근처에 사니까 같이 돌아가는 쪽이 좋겠군요. 동네가 어두운 편이기도 하고.”
“…….”
아카아시는 돌아오는 답이 없자 고개를 돌렸다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터져 버릴 것 같은 르네의 얼굴에 도리어 당황해버렸다.
“괜찮아?! 죽지 마!!”
“멀쩡한 사람 죽이지 마세요, 보쿠토 상.”
보쿠토의 뜬금없는 말에도 불구하고 새빨갛게 달아올라 식을 줄을 모르는 얼굴을 한 채로 르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 사합니다.”
“뭐…별로.”
괜히 간질거리는 마음에 아카아시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4. 저도 모르게 선명한 빛을 품는다

어느새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달아오르는 한낮의 공기와 해가 질 즈음이 되어서도 가라앉지 않는 여름밤의 공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더워지는 만큼 길어진 해는 르네가 하교하는 시간에도 빛을 머금고 하늘에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항상 배구부 전용의 체육관에 들려 보쿠토와 아카아시와 만나 함께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익숙해지기까지 르네는 많은 것을 알아갔다. 언제나 무심한 아카아시의 얼굴은 코트라는, 새하얀 선으로 그려진 네모난 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것들을 품었다. 솔직하게 쏟아내는 쾌감과 환의, 그리고 짙은 아쉬움은 소녀를 매혹시켰다.

“멋지지?”
“엣?!”
홀린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르네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파드득 떨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옆에 앉은 분홍빛 머리가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둘 다 솔직하게 배구를 좋아하니까, 두 사람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져.”
그치? 그녀의 말에 르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마음이었지만 꽤나 긴 시간동안 그를 알아가면서 르네의 품속의 싹은 무럭무럭 자라난 상태였다. 항상 담담한 얼굴이던 그도 좋지만 저렇게 생생한 얼굴도 좋았다.
“진심으로….”
“응?”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서 멋져요.”
붉게 달아오른 소녀의 뺨에 시로후쿠가 피식 웃었다.
“인터하이 예선, 보러올래?”
“네?”
“인터하이. 쟤네들이 나가는 배구 대회야. 보러 올래?”
“네!”
솔직한 애정으로 밝게 빛나는 르네의 고동색 눈에 시로후쿠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 녀석들한테는 비밀이야.”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달음박질 친 날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만큼 르네의 달력에는 가위표가 많아졌다. 시로후쿠가 알려준 대회 날에 가까워지는 만큼 늘어나는 가위표에 르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만히 내리눌렀다.

*

르네는 멍청히 입을 벌렸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틀어박히는 공이야 항상 구경해왔지만 이곳에서 보는 것들은 뭔가 달랐다. 필사적으로, 겨우 1점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숫자를 늘리기 위해 심장이 터질 정도로 내달리는 그들이 반짝반짝했다. 1점, 1점에 환호하는 아카아시의 얼굴이 너무도 멋져서 르네는 넋을 잃을 정도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 경기가 끝나고 시합이 끝난 인원이 경기장을 나가는 것을 숨을 고르며 지켜본 르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따뜻했다.

*

“어라?”
“아, 르네.”
어느새 편해진 호칭에 르네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그, 시로후쿠 선배님이 알려주셔서….”
“아….”
고개를 끄덕이는 아카아시를 가만히 바라보던 르네가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과는 달리 땀을 흘리는 것만 빼면 담담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르네의 뺨이 달아올랐다.
“멋졌어요.”
“응?”
“정말, 정말 멋졌어요!”
반짝거리는 르네의 고동빛 눈에 아카아시는 멈칫했다. 언제나 선명하게 제 감정을 내보이는 르네였지만 오늘따라….
“다음 경기도 힘내세요, 또 응원할게요!”
물론 아까는 구경하느라 응원 제대로 못했지만요…. 머쓱하게 웃은 르네가 그럼 어서 쉬라며 맑게 웃었다.
“아…. 고마워.”
그럼 먼저 가겠다며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는 것을 보며 아카아시는 두 손에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항상 보던 미소가 어딘가 모르게 평소와 달랐다.

눈앞에 그린 듯 펼쳐지는 르네의 맑은 미소에 아카아시는 다른 이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한참을 그곳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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